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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서재

재판이야기 7 변론의 원칙?

박찬호님    작성일2022-02-07 16:39:44

법대 4, 고시공부 3, 연수원 2, 법무관 3년 무려 12년을 법률 공부를 하고 처음 판사가 되었을 때,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법에 대해서는 조금은 더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판사로서 처음 접한 사건들 하나하나가 어렵기 짝이 없었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좌절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쉬운 사건, 결론이 뻔한 사건은 법원에 오지 않는다. 어차피 돈을 들여서 법원에서 다투어 봤자 결론이 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종류의 사건들이 있고 이를 규율하는 너무도 많은 법률과 법리가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아닌 이상 그 많은 법률과 판례를 다 외우고 있을 수 없다. 더욱이 법률 역시 자주 변경되고 판례도 매 순간 생성되고 축적된다.

다행인 것은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의 도움을 받아 관계 법령, 판결례, 논문 등을 실시간 검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존경하는 선배 법관께서는 예전에는 육법전서를 다 외고 대법원 판례를 많이 암기하고 있는 판사가 훌륭하고 능력 있는 판사였지만 지금은 검색어를 어떻게 정확하게 넣어서 빠른 시간 내에 사실관계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판례를 검색할 수 있는 판사가 유능한 판사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100% 찬성하는 말씀이고 그로부터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세상이 더욱 좋아져서 구글, 네이버, 다음 등 유명한 포털사이트를 통해서도 어지간한 법률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최근 어지간한 의뢰인들은 미리 상당량의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뢰인들의 법률지식에 놀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전문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문제에 대한 포털사이트의 답변은 대부분 피상적인 경우가 많고 틀린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법률이라는 전문분야에 대해 매우 정확한 답을 게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조한 판결의 사실관계가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인 법학에서 불변의 정답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전문분야에서 잘못된 지식에 대한 맹신은 무지보다 독이 된다.

 

같은 내용의 바둑이 유사 이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다기한 사건들을 변론함에 있어 공통되는 이렇다 할만한 원칙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변호사로서 5년이라는 짧은 송무경험을 바탕으로 그래도 염두에 둘만한 변론원칙을 말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첫째, 형사사건에 있어서는 변론의 방향 즉 무죄를 주장할 것인지 아니면 잘못을 시인하고 피해회복에 최선을 다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피고인이 자백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변호인은 그에 관해 적절한 조언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변론방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변론하더라도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데도, 변호사의 장밋빛 이야기로 인하여 의뢰인은 장밋빛 생각에만 빠져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아무 대비조차 없이 법정구속되어 버리는 경우이다. 실제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의사가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감기초기니까 잘 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서 병만 악화시킨 경우와 다름없다. 좋은 의사라면 정확히 진찰하고 정확한 치료법 즉 자백하고 합의할 경우의 예상형량, 법정구속이 될 가능성, 법정구속이 될 경우에 대한 대비책까지 조언할 것이다.

 

둘째, 민사사건에 있어서는 주장을 법률에 맞게 정확히 하고 요증사실에 대한 증거들을 빠짐 없이 구비해서 제출함과 동시에 상대 주장과 증거에 대한 탄핵을 꼼꼼히 하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를 전제로 핵심 쟁점에 대한 공격과 방어에 집중하여야 한다. 가끔 재판부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방론에만 변론을 집중하는 바람에 배가 산으로 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

핵심쟁점에서 우리가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과감하게 소송을 조기에 종결지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반면, 그 전망이 불투명할 때에는 우리 측 증거관계 등을 보강하는데 힘써야 한다.

특히 1심에서 패소한 항소심의 경우, 최근 제1심 중심주의로 인하여 항소심에서의 공방이 새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1심의 판단이 번복될 가능성의 매우 낮다. 항소심에서 새로이 할 수 있는 주장과 새로이 제출할 증거들에 관해 입증계획을 충분히 세우고 그 필요성에 관해 항소심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어야만 그나마 승소를 기대할 수 있다.

 

셋째, 행정사건은 사실관계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행정사건에서 피고인 행정청이 패소하는 확률이 매우 낮다. 실제 4년 여 울산시 고문변호사를 하면서 수행한 소송에서 울산시가 패소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뻔한 사건은 법원에 가지도 않으므로, 행정청을 상대로 하는 소송들은 그 내막에 억울한 사정이 반드시 존재한다. 문제는 그와 같은 억울한 사정이 관계법령의 해석, 판례에 의해 권리구제까지 가능한 사안인지 여부이다.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려면 행정재판부로 하여금 우리 의뢰인의 억울한 사정이 관계법령의 합목적적 해석, 관련 판례, 외국 사례 등을 종합해볼 때 사법부가 구제해야 하는 특수한 사정이라는 점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하여야 한다.

그 길은 매우 험난하고 쉽지 않은 길이지만, 법률체계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실한 자료검토, 법리검토가 수반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그 보람 역시 크다. 아무튼 행정사건에서의 승소 여부는 법률과 법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검토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변호사의 기본 역량이 가장 꽃 피울 수 있는 재판 영역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졌고, 쓰고 나니 횡설수설인 것 같다.

아무튼 쉬운 재판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