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부에서 판사로 열일하던 때에는 같은 사건을 어느 판사님이 처리하더라도 그 결론이 같거나 대동소이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같은 주장, 같은 증거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니 판사님들의 결론 역시 당연히 대부분 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생각이 크게 바뀐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판사님들마다 사건을 보는 시각이 같지 않고 사건을 파악하는 정도 역시 다르고 판단과정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 세계관이 녹아들 수밖에 없으므로, 같은 사건이라도 판사님에 따라서 그 결론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다.
그 점은 재판을 받는 당사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가 분명하고 그래서 가끔 인공지능이 판결을 대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법정에서 판사님의 파워는 너무도 막강하기 때문에 소송지휘를 통해 기록 자체가 판사님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증거신청을 불채택하면 이를 통해 입증하려고 한 증거자료 자체가 판단의 기초자료에 끼어들 여지조차 없다.
어느 변호사가 ‘대한민국 법원이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이 상급심까지 거치다보면 적어도 70% 정도는 판결이 진실에 부합한다.’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판사로 근무할 때에는 ‘아니 판사들이 70% 밖에 정답을 못 맞춘다고, 그것도 대법원까지 가면서’라고 그 말에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지만, 막상 변호사로 재판을 하면서 그 변호사의 말에 조금씩 수긍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지금도 ‘변호사가 아는 진실이 실제 진실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까지 생각한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정답률이 높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오답률이 적지 않다.
그래서 판사님을 잘 만나는 복도 재판에 있어서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의뢰인들 중에 ‘변호사님, 이 사건은 제가 그냥 있어도 이기는 사건인데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지는 사건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이 유능한 변호사일까? 이겨야 하는 사건을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능한 변호사일까?
특히 큰 이권이 걸린 소송에서는 온갖 거짓 주장이 난무하고 갖은 술수가 등장한다. 판사님은 기록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시고 가끔은 업무과중으로 시간이 부족하시기도 하며 가끔은 나와 가치관과 생각이 다르시다. 그런 온갖 변수를 극복하고 재판부를 기어코 설득해서 이길 사건을 이긴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답률이 적어도 70%는 된다는 것이다.
박찬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