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예민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판사로 근무할 때 직업적 특성 때문에 못했던 말도 많았는데, 변호사가 된 지금 하고 싶은 말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누구나 무죄추정의 법칙을 잘 알고 있고 무죄추정은 현대사회의 상식이다.
그런데 과연 형사재판에서 무죄추정의 법칙은 살아 숨쉬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초짜를 겨우 벗어난 5년차 변호사는 회의적이다.
실상 사회에서도 무죄추정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언론보도를 통해 피의자가 특정되고 그 사람이 구속되기라도 하면 이미 그 사람은 죄인이다. 나중에 오랜 법정 공방 끝에 천신만고 끝에 무죄의 확정판결을 받더라도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되지 않을뿐더러 이미 세간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그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진정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이미 잊혀진 사건을 거론하는 것조차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특정 유명인이 무고하게 형사재판을 받고 고초를 겪은 예를 들지는 않겠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관행으로 인해 무죄추정이라는 원칙이 제대로 사회에서 자리잡지 못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법과 원칙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법정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가끔은 그렇지 못한 현실의 벽에 부딪치기도 한다.
가끔 정의감이 남다르게 투철하신 판사님께서는 피고인이 자신의 결백함을 일일이 증명하지 못하면 유죄판결을 선고하시는 경우가 없지 않다.
존경하는 이인복 대법관님께서는 과거 대법관으로 근무하시면서 대법원 판결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검사의 공소사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에서 보이는 여러 불일치, 모순, 의문에는 애써 눈 감으면서,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에는 불신의 전제에서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법원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변호사들은 검찰이 아닌 피고인에게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법정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한다.
내가 선고한 수많은 판결 중 상급심에서 파기된 것은 죄다 무죄판결들이었고 유죄판결이 파기된 것은 단 한 건으로 기억한다. 현실은 지금도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박찬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