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스스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어 반드시 숙주 세포 안으로 침입하여 기생할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살아갈 수 없으므로 대부분 숙주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하기보다 기생하여 공존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숙주의 입장에서 바이러스라는 이물질이 체내에 침투하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면역체계를 발동시켜 바이러스를 제압하려 하게 되는데, 특이한 경우 신종 침입자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오판하거나 과잉으로 대응하는 과다한 면역계의 반응으로 인해 사이토카인 폭풍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면역체계가 바이러스 뿐 아니라 폐를 구성하는 폐포와 혈관까지 한꺼번에 공격해서 호흡부전으로 인한 급성사망에 이를 수 있다.
누구나 살아감에 있어 자신과 같거나 유사한 가치관, 취미, 기호, 성향을 가진 사람을 편하게 느끼고 쉽게 친해질 수 있으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딘가 불편하고 어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자신과 같거나 유사한 존재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자신과 다름을 용납하지 않고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마치 낯선 바이러스에 대한 과다한 면역반응으로 자기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이토카인 폭풍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름은 무수히 많다.
키, 외모, 능력, 말투, 좋아하는 음식, 가치, 정치인, 장소, 살아 온 환경 등...
다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존중은 면역력을 키워 스스로를 강하게 함과 동시에 세상과의 온화한 관계설정으로 인해 결국 모든 일을 조화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가끔 다름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알레르기성 반응은 마치 사이토카인 폭풍이 자신의 중요장기를 파괴시키는 것처럼 스스로를 망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물론 다름과 틀림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다만 틀림의 영역이 너무 넓어서 그것이 다름과 혼용될 때, 이는 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홀로 맑음으로 세상과 교유하지 못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틀림의 영역은 개개인마다 다를 터이지만,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 약자와 타인에 대한 배려, 권리와 의무 같은 본질적 영역에서의 확고한 가치관이면 족할 것이다.
추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부족함에서 가득채움을 발견할 수 있으며,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심안을 가질 수만 있다면, 행복하게 살아감에 있어 크게 부족하지 않으리라.
어쩌면 모든 인간이 자연 속에서 하나의 바이러스에 불과한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을......
2020. 4. 20. 장애인의 날 아침 문득 떠오른 생각.
박찬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