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위한 투쟁’
예링은 독일의 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형적 독일 중산계급 출신인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초기에는 로마법을 연구하여 로마법의 정신 등을 저술하였으나 그 후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저술하면서 개념법학을 비판했다. 이 책은 예링이 빈의 법률협회에서 한 강연원고였는데, 짧은 글인데도 출간되자마자 굉장한 선풍을 일으킨 것은 그의 새로운 관점이 논리정연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강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고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
이 책 첫 머리 문장은 목적론, 공리론적 관점에서 법사회학의 토대를 마련한 그의 새로운 주장을 그대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당시 사비니, 푸흐타로 대표되는 역사법학, 개념법학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에 있었던 그의 사상을 대변한다.
그는 법의 생명은 투쟁에 있고 법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생동하는 힘이라고 하였다. 자연법에 기반하여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공공의 안녕을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공적인 규율로서 법을 파악하는 일반적인 시각, 즉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각에서는 다소 생소한 주장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에 귀 기울여 보자.
“법이란 것을 질서와 평화의 상태에서만 알고 있으나, 영원하리라는 평화에 대한 믿음은 최초의 포성이 그 아름다운 꿈을 산산조각으로 만들 때까지만 찬란하게 피어 있다. 법이 아무런 고통이나 노력도 없이 마치 들에 난 풀처럼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상태를 이상화하는 잘못된 정말로 낭만적인 견해이다.
역사법학자들은 선사시대를 민족 신념의 내부로부터 법이 아무 고통 없이 평온하게 형성된 무대라고 했으나, 고대의 자료에 의하더라도 법의 탄생은 인간이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강한 진통을 수반했다. 또한 역사법학자들은 새로운 법규도 언어의 규칙처럼 손쉽게 생겨난다고 하였으나, 모든 계급의 이해관계가 현행법과 밀접히 연관되기 때문에 이들 개인이나 계급이 추구하는 이해를 극히 예민한 방법으로 침해하지 않고서는 법 개정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러한 시도는 이익을 침해당하는 자들의 강한 반항을 받게 되어 결과적으로 투쟁을 야기한다.
법의 역사가 보여주는 모든 위대한 업적 즉 노예와 농노제도의 폐지, 상업 및 신앙의 자유 등은 격렬한 때로는 수세기 동안 계속된 투쟁을 통해서만 비로소 획득될 수 있었다. 투쟁은 권리를 위한 노동이고, 투쟁이 없는 평화나 노동이 없는 향락은 에덴동산의 시대에나 속하는 것이다.”
법의 탄생과 발전이 고통, 투쟁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냉철한 사회인식과 함께 그는 독자들에게, ‘한 민족이 그들의 법에 애착을 가져 그것을 주장하는 사랑의 힘은 그 법을 얻기 위해 바친 노력과 고통의 정도에 따라 정해지고, 민족과 법 사이를 이어 주는 가장 견고한 유대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희생이므로 슬퍼하지 말라. 탄생을 위해 법이 요구하는 투쟁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다.’고 위로하였다.
이어서 그는 주관적인 의미에서의 법, 즉 추상적 규범을 구체적인 개인의 권리로 지향함으로써 실체화되는 법의 측면에서 ‘권리를 위한 투쟁’에 관한 논의를 이어간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권리는 권리자의 인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고의적인 불법으로 인하여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은 곧 권리자의 인격을 침해당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투쟁은 인식이나 교육이 아닌 고통에 대한 단순한 감정 즉 법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권리를 위한 투쟁은 인격 자체의 정신적인 자기 보존이다. 따라서 인격 자체에 도전하는 비열한 불법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이고, 도덕적인 자기보존의 명령이며, 공동체 사회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는 영국인을 예로 들고 있다.
‘대륙에서 여행 중인 영국인은 여관 주인이나 마차꾼이 그에게 속임수를 쓰려 할 때 그것이 몇 푼 안 되는 돈일지라도 마치 옛 영국법을 방어했던 것 같은 결단력을 가지고 대항하며 필요하면 자기가 지불을 거절했던 비용의 10배를 지불하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 왜냐하면 그가 방어하는 몇 푼 안 되는 돈에는 사실상 옛 영국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고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를 이해하고, 따라서 감히 그를 속이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몇 세기에 걸친 정치발전과 사회생활이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예링이 하고자 했던 대부분의 주장이 위와 같이 간단한 비유 속에 담겨져 있다. 보잘 것 없는 대가를 위해 큰 희생을 치르는 투쟁(소송)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인가? 라는 보편적인 질문에 대하여, 그는 고의적인 침해자에게 투쟁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금전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불법에 대한 정신적 고통. 즉 자신의 인격과 명예에 대한 법감정 때문이므로,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찾지 않는다면 이는 개별적 권리가 아닌 권리 일반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 된다고 답을 한다.
또한 권리 자체는 객관적으로 법적으로 보호된 이익에 불과하나, 주관적 의미에서 이익은 물건에 대한 권리자의 인격이 투영되면서 법의 실제 핵심이 되므로, 물질적인 이익만을 고려하는 낮은 영역에서의 산문적인 법은 인격 주장을 목적으로 하는 권리를 위한 투쟁의 높은 이상 영역에서는 시(詩)가 되는 것이고, 이는 더 나아가서 권리의 실현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협력하는 동기에까지 도달하게 되며, 권리의 포기는 그것이 개인적으로 끝났을 때에는 무해하나, 행위의 일반원칙으로 지향된 때에는 권리의 몰락을 의미하므로, 권리를 위한 투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이자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의와 무법상태가 오만하게 머리를 든다면 이것은 법 수호를 위해 소명된 사람들이 그들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이므로, 불법을 행하지 말라는 원칙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불법을 참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법(法)은 한자로 물 수(水)와 갈 거(去)자를 합친 글자이다. 물이 흘러가듯이 순리를 따라 정의의 바다로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물이 바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친 바위와 소용돌이를 거쳐야 하듯이 정의의 바다에 이르는 길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흔히들 선진사회는 성숙한 시민의 권리의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성숙한 시민의 권리의식은 무엇인가?
대륙에서 태어난 예링이 영국인의 권리의식을 부러워했던 것처럼, 권리의식이란 몇 세기에 걸친 정치발전과 사회생활에서 비롯된 권리를 위한 투쟁의 산물이고 그것은 인격 자체의 정신적 자기보존과 공동체에 대한 의무의 표현이자, 그 법을 얻기 위해 바친 노력과 고통 그리고 희생의 기억이다.
오늘날 우리도 조국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서 바친 노력과 고통 그리고 희생을 기억하고 있다.
법(Recht)은 권리와 동의어이고, 따라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곧 법을 위한 투쟁이다. 물질적인 이익이라는 낮은 단계에서, 불법이 인격을 침해하는 것에 대한 고통(법감정)에서 비롯된 투쟁의 의무, 더 나아가서 권리 일반의 구체적인 실현이라는 공동체 사회에 대한 의무로까지 권리 자체를 승화시킨 100여 년 전 어느 독일 법학자의 논리는 너무나도 정연하고 그 당시의 사회현실은 물론 오늘날 우리의 사회현실까지 가감 없이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소하니까 보호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과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법적 이익일지라도 고의적인 불법에 의해 모욕당하고 침해당했을 때 느낀 고통이라는 법감정이 결국은 사회공동체 권리 일반의 발전이라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법이 현실 사회에서 작용하는 본질적인 원리를 일깨워준 예링의 주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박찬호님